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반전으로 가득하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아무런 전조 증상도 없이 인생을 180도 달라지게 한 수많은 터닝 포인트들을 생각해 봤을 때, 영향력의 순서를 매겨 보자면 그 0순위로 항해99를 꼽을 수 있겠다. 항해99를 수료하고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걸음마를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조금 지난 이 시점에, 당연하게도 항해99의 영향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항해99 회고는 지난번에도 한 번 올렸었다. 찾아보니 그것도 벌써 1년 전이다. 물론 과거가 바뀔 일은 없으니 항해99에서의 객관적인 경험들은 크게 다르게 적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후 1년간 현업에서 느낀 점들을 토대로 조금 더 의미 있는 회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맘대로 기대해 본다. 저번에 쓴 글에서 영향 받지 않으려고 가급적 지난 회고를 읽지 않고 새로 쓰려고 하는데, 혹시라도 배치되는 내용이 있다면.. 민망할 예정..

 

- 목차 -
1. 사실, 나는 공무원이었다
2. 사실, 나는 개발자가 될 생각이 없었다
3. 사실, 나는 항해99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4. 사실, 나는 항해99를 믿지 않았다(1)
5. 사실, 나는 항해99를 믿지 않았다(2)
6. 사실, 나는 그냥 잘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7. 사실, 나는 내가 일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1. 사실, 나는 공무원이었다

그것도 전공과 상관없이 누구나 시험만 잘 보면 되는 일반행정직 공무원이었다. 전공이 무엇이든, 학점이 몇 점이든, 더 나아가서는 최종 학력이 무엇이든, 시험에 합격한다는 전제 하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직업, 그것이 나의 직업이었다. 그렇다면 내 대학교 전공? 그건 또 고고학이었다. 심지어 학과 수석으로 입학하고 학과 수석으로 졸업까지 했다. 하지만 전공 과목은 재미가 없었다. 당연히 전공을 선택할 당시에는 재밌을 줄 알았다. 고3 교실에 배달되어 온 수많은 대학교 홍보물들 중 유독 내 시선을 잡아 끈 학교였고, 흥미로워 보이는 학과였다. 기대를 안고 입학한 후 첫 전공 필수 수업에서 이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빠르게 포기했고,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학점 관리만 열심히 했다.

졸업이 다가올 때쯤, 공무원 시험 열풍이 불어 닥쳤다. 어느 학교나 비슷한 상황이었을 테지만 휴학한 동기나 선배들이 공시 준비를 해서 합격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다. 아직 딱히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학과 공부만 열심히 하던 나도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했고, 졸업 후 합격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2. 사실, 나는 개발자가 될 생각이 없었다

굳이 직접 공무원으로 일을 해 보지 않아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겠지만, 업무를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거나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그 당시 나는 이직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개발자 취업이 붐이라더라’, ‘개발자가 돈을 많이 번다더라’ 하는 피상적인 얘기들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동하진 않았다. 나는 개발이 뭔지 하나도 몰랐다. 그게 뭔지 알아야 취업 준비는 둘째치고 거기에 대해 관심을 갖든 말든 할 텐데, 나는 정말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니 개발, 코딩, 그와 관련된 것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나는 당시 나의 첫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고, 친구들은 연락이 닿을 때마다 SNS에 고양이 사진을 올려 달라고 했다. 평소 SNS와는 거리가 멀던 인생이었지만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고, 다른 사람들의 피드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1년 5월의 어느 날, 가정의 달을 맞아 스파르타코딩클럽에서 HTML/CSS/JavaScript 기초에 대한 무료 강의를 제공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요즘 애들은 초등학교에서 코딩을 배운다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컴퓨터실에서 선생님의 눈을 피해 피카츄 배구, 스타크래프트 같은 것들을 하며 친구들과 깔깔거리느라 바빴다. 그러니까 나는 코딩에 있어서는 초등학생보다도 무지했다. 무료고 길지도 않다는데 한 번 들어나 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강의는 다 합쳐 봐야 3시간 남짓이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짧아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무 재미있었다. 내 웹서핑 인생은 6살 때 쥬니어네이버로 시작되었지만, 웹사이트라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는 그간 단 한 번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커다란 충격이었고, 나는 뭐가 있을지 모르는 이 다음이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다.

 

브라우저에 텍스트를 띄운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 :)

 

3. 사실, 나는 항해99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개발자로 이직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개발자 취업을 준비하는 코딩 부트캠프에 참여할 생각 또한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그저 내가 수강했던 무료 강의의 다음 커리큘럼 격인 과정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무료 강의를 제공했으니 분명 그 다음에 연결되는 과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스파르타코딩클럽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봤다. 40만원짜리 웹개발 종합반이라는 강의가 있었고, 내 상황에는 그게 가장 적합해 보였다. 커리큘럼을 살펴보니 그외에도, 조금은 더 전문적인 듯 보이는 심화 과정이나 앱을 개발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것과 같은 다양한 강의들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아예 별도 메뉴로 항해99라는 게 따로 빠져 있었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항해99는 그 당시 부트캠프가 뭔지 몰랐던 내게는 매우 생소했고, 이제 막 2기로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중이었다.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커리큘럼이라고 적혀 있는 말들을 봐도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유튜브 라이브로 설명회가 열린다고 해서 ‘한번 들어보자’고만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사전설명회를 듣고 나서 나는 항해99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베이스가 없는 비전공자여도 참여할 수 있고 개발자로서 취업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물론 나는 취업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수료하고 나면 일을 할 수 있다니 그만큼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면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00%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살고 있었던 나로서는, 일부나마 오프라인으로 진행한다고 했다면 바로 그 점 때문에 포기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온라인으로만 진행한다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것은 나에게 큰 장점이었다.

 

 

다만, 항해99에 참여하게 된다면 참가비 400만원을 내야 했다. 부트캠프를 여럿 놓고 고민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땐 그것도 여타 부트캠프에 비하면 저렴한 거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40만원짜리 웹개발 종합반을 수강하려던 당초 계획에 비하면 확실히 너무 큰 금액이었다. 그런데 항해99에 참여하려면 1차로 지원서를 제출하고, 2차로 면접까지 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거야말로 내가 항해99에 참여할지 말지를 고민해 볼 시간적 여유를 가질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최종적으로 합격하기 전에는 400만원을 내지 않아도 됐다. 1차에서 떨어지면 고민의 여지도 없을 테니 차라리 다행이고, 만약 면접을 봐야 한다면 그때 가서 내 마음이 어떨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원서가 통과된 후 항해99에서 전화가 왔다. 예정에 없이 길게 이어진 통화에서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개발자로 취업을 꼭 하고 싶어서 지원한 건 아니다, 원래는 웹개발 종합반을 들으려고 했다, 아직 아는 건 별로 없지만 코딩은 재밌더라, 그래서 더 배워보고 싶다, 등등. 그리고 꿀팁을 얻었다. 항해99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최대 2주의 사전 준비 기간을 주는데 그때 웹개발 종합반 강의를 제공하며, 만약 그 기간 중에 하차하게 된다면 물론 하차를 권고하는 건 아니지만 웹개발 종합반 수강료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외하고는 환불이 된다고 했다. 솔깃했다. 나는 애초의 계획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으며, 혹여 그 이상으로는 더 하고 싶지 않더라도 손해 보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전화 한 통으로 나는 항해99에 참여할 의지를 굳혔다. 그리고, 애당초 나는 면접 경험을 통해 참여 여부를 스스로 확정짓고 싶었지만, 나의 학습 의지와 대화하는 태도를 높이 평가한 항해99로부터 본의 아니게 면접 자체를 면제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코딩은, 개발은, 계속해서 재미있었고 그 다음이 계속해서 궁금했으므로 나는 결국 중도하차라는 선택지는 단 한 순간도 고려해 보지 않은 채 그대로 수료해 버리고 말았다.

 

 

4. 사실, 나는 항해99를 믿지 않았다(1)

항해99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는 말이 있다. 함축하자면, ‘현업도 이렇다’는 말이다. 다른 코딩 부트캠프가 어떤 컨셉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항해99는 말 그대로 참여자들을 선원으로 삼아 바다를 항해하게 한다.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어려움은 때에 따라서는 혼자서 해결해야 할 수도 있고, 팀원들과 함께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당연히 손 들고 질문하면 언제든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줄 튜터들, 매니저들, 멘토들이 있다. 하지만 항해99에서 강조하는 건, 누군가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비록 해결책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우선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결국 질문을 하게 되더라도, 그 전에 한 번 더 고민해 보고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태도.

이건 내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의 트렌드였던 ‘자기주도학습’ 컨셉과도 어느 정도 일치해 보였다. 그게 왜 중요한지는 고등학교 내내 인이 박이도록 들었으므로 같은 맥락에서 항해99의 요지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잘 모르듯이 항해99에 참여하던 당시에는 이런 것들이 다소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참가비를 받고 운영하는 교육 과정인데도 스스로의 학습과 노력을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노베이스 비전공자의 대표 주자로서 관련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격차를 도대체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싶어서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항해를 수료한 지 14개월, 개발자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지 13개월이 지난 지금, 항해99의 기조는 이보다 더 옳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나는 현업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만 치중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항해99에서 얼마나 참여자들을 내실 있게 키워 내려고 했는지 보이는 것 같다. 코드나 개발 언어, 프레임워크 같은 것들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은 구글링을 통해 얻을 수 있고, 책을 읽어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대한 것들은 접했다고 해서 머릿속에 다 넣을 수 없으므로, 어차피 필요한 순간이 오면 자신을 의심하며 다시 검색하고 다시 찾아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 있는 환경에서라면 질문을 함으로써 손쉽게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은 환경에서는 결국 혼자서 찾아 나가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필요한 것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또는 크고 작은 위기에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개발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급변하는 기술들 사이에서 개발자로서 살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항해99는 참여자 개개인에게 1주일에 100시간을 할애해 몰입할 것을 강조한다. 처음에는 100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게 부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스스로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공부하기에 100시간은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침 9시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새벽 2, 3시까지, 때로는 해 뜨는 것을 보면서도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에 피곤한 줄을 몰랐다. 개발자도 사람인데 당연히 평생 개발만 하며 밤을 샐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보낸 99일은 개발자로 사는 삶의 밑바탕이 되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고 생각한다.

 

정규 커리큘럼의 첫 팀 프로젝트에서 그렸던 와이어프레임 :)

 

5. 사실, 나는 항해99를 믿지 않았다(2)

또 한 가지 내가 항해99를 의심했던 부분은 ‘동료 개발자들과의 커넥션’이었다. 같은 기수로서 동고동락하며 지낸 서로가 나중에 현업에서도 큰 힘이 될 거라는 것이었다. 인싸가 아닌 사람으로서, 이건 솔직히 처음부터 그냥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두 번의 개인 과제와 강의 수강 기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협업해야 하는 팀 프로젝트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팀원들에게 얼마나 유대감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물며 같은 팀이 아니어서 접점조차 찾기 힘든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싶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주에 100시간, 일요일 하루 쉰다고 해도 하루에 16시간 이상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면, 비록 16시간 내내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더라도 혼자라면 외로웠을 그 시간을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든든해지기 마련이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남들과 비교하면서 계속 작아지기도 했지만, 팀 프로젝트가 계속되고 팀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고민이나 노하우들을 공유하면서 서로 동기부여를 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오늘은 컴퓨터 내가 더 늦게 꺼야지’ 하는 작은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나는 원체 발이 넓은 사람이 아니라서 가까이 지낸 사람들이 많진 않지만, 항해99에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도 계속 연락하며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친구들이 생겼다. 수료 이후 각자 취업하고, 일하고,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소식을 전하고 정보를 나누고 있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두 번째에 위치하곤 있지만, 내가 항해99에서 얻은 가장 귀중한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이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힘들고 바빴던 시간을 함께했고, 나의 발전 과정을 직접 목격해 주었고, 그렇기에 나의 가능성을 알아주고, 한편으로는 각자 스스로 노력해서 개발자가 된, 끈기 있는 바로 그 친구들.

 

화질구지 너무 죄송합니다ㅠㅠ

 

6. 사실, 나는 그냥 잘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위의 내용과 이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대되는 얘기이다. 초반에는 단편적으로, 나처럼 비전공 노베이스라서 부족한 상태로 시작하더라도 ‘꾸준하게’ ‘열심히’ 노력해서 결과적으로 어떻게든 ‘잘’ 하면 무사히 수료하고 성공적으로 취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내 부족함을 깨닫고 학습 시간을 최대 한도로 늘려 나가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아무리 혼자 노력하고 잘 해 나간다고 해도, 팀 프로젝트가 주를 이루고 있는 커리큘럼 상, 또 100% 온라인이어서 참여자 현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 상, 다른 사람에게 받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고 지냈든 모르고 지냈든, 중간에 포기하고 하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중에라도 들어보면 그 원인은 다양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하차를 결정했다는 이유로 여러 명이 같이 하차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도하차에 대한 고민은 당연히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그런 결정을 내린 스스로가 가장 깊게 했을 테지만, 그로 인해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취업에 있어서는 팀 프로젝트, 특히 마지막 실전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가지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실전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일찌감치 좋은 팀을 구성하기 위한 눈치 게임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소문이 돌고, 잡음이 생기고, 그런 기류 감지에 둔감한 나조차도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그런 어수선함을 적절히 관리하거나 애초에 통제하거나 하는 식의 운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은 아쉬웠다. 마찬가지로 중도하차 이슈에 대한 사전, 사후 관리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초반 기수인 2기(21.06.07~21.09.13)였으므로 지금은 훨씬 나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항해99 측을 통해 들은 얘기로는, 현재는 눈치를 보며 팀을 구성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한다. 당시에는 많이 아쉬웠던 부분인데 이게 개선되었다니, 항해99 수료생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이다.

 

 

7. 사실, 나는 내가 일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항해99 2기를 무사히 수료하고 결국에는 개발자가 되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한 사람들이 나보다 뭔가가 부족해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과 나는 시작점이 같았지만, 나는 개발을 재밌어 해서, 그리고 운 좋게도 이게 나의 적성에 맞았던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라고 믿는다. 말 그대로 운이 좋았다. 혹시라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항해99 시작 후에 알았다면, 아니면 수료한 후 첫 취업을 해서 뒤늦게 알았다면, 틀림없이 내적 갈등을 겪었을 게 분명하다. 나는 항해99에서 내 적성을 찾았기 때문에 큰 문제를 겪지 않았다.

커리어를 시작한 지 1년을 갓 넘긴 개발자로 지금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을 하는 순간에도 내가 일을 하는 건지 노는 건지 분간이 안 갈 때가 있다. 그만큼 업무의 매 순간이 재미있다. 퇴근 시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애초에 일하던 중에 지금이 몇 시쯤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다. 그저 나는 하루하루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이걸 내 업무, 내 직업이라고 불러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개발자로 취업하기를 희망하고 있다면, 그게 연봉 같은 표면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개발자라는 이유로 연봉이 무조건 많은 것도 아닐 뿐더러, 말마따나 재미없는 업무를 하는데 생계 유지만을 위해 다니는 직장이라면 연봉이 많다고 한들 그게 의미가 있을 리가 없다. 개발이 대략적으로라도 어떤 일인지,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한 일인지를 알고, 그게 재미있고, 그래서 개발자 취업을 희망한다면 꼭 한 번쯤은 자신있게 그 문을 두드려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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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만 해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개발자로서 취업을 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은 시속 [현재 나이]km로 간다지만 지나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이제는 회사로 출근하는 일상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도 했고, 고맙게도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준 항해99에 대해 최종적으로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 목차 -
1. 항해99 지원 과정
2. 사전 준비: 첫 발을 떼기 위한 워밍업
3. 실전 프로젝트: 항해99의 꽃이자 최종 보스
4. 취업: 새로운 시작

 

항해99 지원 과정

 

처음부터 취업을 목적으로 항해99에 참여했던 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코딩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맨 처음 시작점은 스파르타코딩클럽의 5월 가정의 달 이벤트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인스타그램 광고를 나도 모르게 클릭한 후 스파르타코딩클럽에서 제공하는 추억소환코딩패키지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고, 인생 처음으로 HTML과 CSS를 이용해 웹페이지를 제작하고 배포해보는 경험을 했다. '요즘은 애들도 학교에서 코딩을 배운다는데 나는 코딩의 ㅋ도 모르는 게 말이 되나'로 시작했는데, 코딩이라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이 다음 과정을 배우고 싶으면 무슨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 찾아보다가 30만원짜리 웹개발종합반 과정을 찾았다. 그리고 항해99라는 부트캠프에 참여하면 부트캠프 시작 전 2주의 사전 준비 기간에 그 웹개발종합반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었다. 비록 400만원이라는 참가비가 발생한다는 함정이 있었지만 99일간의 커리큘럼을 살펴보고 나니 구미가 당겼고, 본격적으로 공부해볼까 싶었다. 마침 2기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어서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되는 설명회를 시청하고 나서 지원서를 넣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스파르타코딩클럽에서 전화가 왔다. 면접 일정을 잡는 전화였는데, 어쩌다 보니 서로 나누는 이야기가 길어졌다. 지원서에도 써내긴 했지만 지원동기를 다시 물어보기에 '재미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 아직 개발자로서의 취업을 고려하는 건 아니지만 항해99가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30분이 넘는 통화에서 나는 내 적성에 개발이 맞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고, 굳이 화상 면접을 보지 않아도 되겠다고, 나는 항해99에서 찾는 "좋은 개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도 들었다. 사전 준비 과정에서 웹개발종합반 과정을 듣고 항해99의 본격적인 커리큘럼이 시작하기 전에 중도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웹개발종합반 수강료만 제외한 나머지는 환불 받을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덕분에 더욱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화상 면접은 패스했고 바로 사전 준비 과정에 돌입했다.

 

사전 준비: 첫 발을 떼기 위한 워밍업

 

그때만 해도 다들 나처럼 면접을 패스하고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전 준비 스터디에 참여했는데, 모두들 줌 사용에 익숙한 게 이상했다. 알고 보니 면접을 줌을 통해서 봤다고...? 나만 줌 사용이 처음이었던 거였다. 다들 공유하는 면접 경험이 나만 없었던 점에서 오히려 나는 약간 위축되었던 것도 같다.

아무튼 2주간의 사전 준비 과정에서는 내가 원래 듣고자 했던 웹개발종합반 강의를 들어야 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스터디원들과 미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적는 Daily Report 웹페이지를 만드는 거였는데, 프론트엔드와 백엔드를 나눴다. 그때의 나는 프론트엔드가 뭔지, 백엔드가 뭔지도 전혀 몰랐다. 몰라서 물어봤지만 설명을 들어도 몰랐다ㅋㅋㅋ 당시 나는 조장을 맡은 분과 함께 백엔드를 담당했고, 눈치껏 따라가고자 갖은 애를 썼다. 그때부터 무한 구글링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가 짜 놓은 망한 코드를 조장 분이 리팩토링하는 식으로, 엉성하게나마 뭐가 되어가긴 했다.

 

실전 프로젝트: 항해99의 꽃이자 최종 보스

 

2주간의 사전 준비 과정을 마친 후에는, 미니 프로젝트(1주), 알고리즘 강의 수강(2주), React, Spring, Node.js 중 선택한 주특기 강의 수강 및 개인 프로젝트 2번(2주), 프론트&백 협업 프로젝트 2번(2주)을 거쳤고, 그 다음이 6주간의 실전 프로젝트였다. 실전 프로젝트야말로 가장 큰 프로젝트였고 취업으로 향하는 핵심 관문이었으므로 실전 프로젝트 시작 1주일 전인 클론코딩 때부터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기억이 난다. 실전 프로젝트 팀을 짜는 것을 다들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전 프로젝트 주간이 시작되자마자 팀 빌딩 방식에서 발생한 잡음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모든 조 편성이 한 번 엎어지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 확정된 우리 팀은 의견 조율도 잘 되고 분위기도 좋았다고 기억한다, 일단은...

우리 팀은 프론트엔드 3명에 백엔드 3명, 외부에서 들어오신 디자이너 두 분까지 해서 총 8명의 팀원으로 구성되었다. 기획 회의는 다같이 하고 기획안에 맞춰 디자이너분들이 피그마에 디자인을 그려주시면 그에 맞게 뷰를 짜고 기능을 붙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전의 프로젝트들에서는 디자인을 해주시는 분이 안 계셨기에 프론트엔드에서 디자인까지 담당했는데, 디자이너분들이 디자인을 전적으로 맡아주시니 비록 그걸 그대로 구현해내는 게 까다로웠을지언정 창작을 해낼 필요는 없었으니 마음이 좀 더 편했다. 그리고 확실히 전문가의 결과물은 퀄리티가 달랐다...

실전 프로젝트 3주차가 끝날 즈음 프로젝트 중간 점검이 있었고, 발표회 형식으로 지금까지 작업한 것들을 모두의 앞에서 소개하고 튜터분들에게 리뷰를 받는 자리였다. 나와 다른 두 분이 담당한 프론트엔드 쪽은 프론트엔드 개발자라면 당연히 신경써야 하는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부분에서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간 굳건했던 멘탈도 이때 좀 타격을 입었지만 해야 할 일이 산더미여서 덕분에 금방 다시 작업에 착수했다.

중간 점검이 있은 지 5일 정도 지났을 때, 진짜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다. 프론트엔드 팀원 두 분이 각자 다른 이유로 한날 한시에 동반하차를 한 것이다. 그 시기 자체가 프로젝트 초반도, 후반도 아닌 너무 애매한 어느 시점이었다. 이미 세 명이서 벌여놓은 작업량이 있는데 그걸 나 혼자 진행해야 하는 거였고, 한편으로는 아직 프로젝트는 끝날 단계도 아닌 데다 개발하지 않은 기능도, 마무리해야 하는 기능도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항해99 매니저 분이 급히 불러서 1대1 면담도 했고, 긴급 팀 회의도 했고, 급박하게 돌아갔던 그날은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프로젝트의 방향이 기능을 추가하는 것에서 현상 유지를 잘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다른 조에서 다들 진행하는 프로덕트 마케팅에도 우리 팀은 비중을 많이 두지 않기로 했지만, 그때부터 나는 밤에는 거의 항상 깨어서 작업을 하고 아침이나 낮에 잠들곤 했다.

체력이 거의 바닥났을 무렵 실전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최종 발표회가 열렸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프로젝트가 끝났다는 사실에 후련하기도 했지만, 우리 팀 부스를 방문해주신 협력사 분들이 마감이 잘 되어 있다(이건 이후에 면접을 다닐 때도 많이 듣게 된 얘기다)며 혼자 해낸 것을 칭찬해주셔서 그간의 고생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취업: 새로운 시작

 

최종 발표회가 끝나자마자 항해99에서는 마지막 단계인 취업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우선 항해99의 협력사들 리스트 중에서 지원할 곳을 최대 30개까지 골라서 지원하고, 그러고 나서는 로켓펀치와 원티드를 통해 최소 15개사에 지원하라고 했다. 나는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원했기 때문에 개발하게 될 서비스 내용을 보고 흥미가 가는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다. 협력사 30개, 그 외에는 40~50개 정도, 도합 70~80개 회사였다. 지원한 회사 수는 많았지만, 협력사에도 통일된 하나의 양식으로 지원서를 넣고, 로켓펀치와 원티드도 작성한 한 가지 양식으로 여러 회사에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어서 지원하는 것 자체가 아주 고되진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회사에서 서류 통과 연락을 받았고, 여러 번의 코딩테스트와 면접 일정을 안내 받았다. 그래서 그때 잠시, 섣불리 많은 회사에 지원서를 넣은 스스로를 탓했다.

코딩테스트는 알고리즘 기간에 백준이나 프로그래머스에서 풀었던, 말 그대로 알고리즘 문제로 치르진 않았다. 내가 받은 코딩테스트의 과제는 주로 회사에서 이미 서비스하고 있는 페이지를 클론코딩해서 제출하거나, 회사에서 요구하는 몇몇 사항을 반드시 충족하는 페이지를 만들어서 제출하는 식이었다. 며칠의 시간을 요하는 작업들이어서 안 그래도 바쁜 일정이 더욱 타이트해졌다.

면접에서는 주로 브라우저나 자바스크립트에 관한 지식을 묻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술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것들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면접에서 나에게 회사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면 질문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꼭 물어봤던 게, '왜 내 지원서를 좋게 봤는지'였다. 그러면 또 그때마다 최종 발표회에서 들었던, 이 모든 걸 혼자 해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칭찬을 듣곤 했다. 그러고 보니 칭찬 받으려고 일부러 물어봤던 건가, 나...? 팀 프로젝트에서 혼자 남아 작업하게 된 그 에피소드가 결국 면접에서 주무기로 활용되었다.

취업을 결정한 회사는 내가 지원한 회사들 중 가장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아직 출근한 지 한 달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게 일하는 중이다. 회사에서는 프로젝트 때와 달리 어쩌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기획안과 일정에 맞춰 개발해야 하지만, 코딩이라는 즐거운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만족스럽다. 간단한 코드를 짜려고 해도 많이 찾아보고 알아가면서 시도해야 하지만, 계속해서 공부하며 새로운 걸 배워 나가야 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처음에는 개발 분야에서 취업을 시도할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는데, 항해99가 끝나고 나니 어느새 개발자가 되어 있다. 항해99에서 지향하는 "좋은 개발자"가 과연 나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좋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방향 설정을 해야 하는지는 조금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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